삼국에서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앞장선 것은 모두 왕실이었다. 왕실이 불교의 수용에 적극적 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앙 집권적 정치 체제의 수립과 관련이 있다. 삼국이 연맹 국가의 단계를 넘어 강력한 왕권을 갖춘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정신적 지주가 필요했다.
종래에는 건국 신화 등을 통해 하늘의 자손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국왕의 지위와 지배를 신성시하였다. 그러나 영역의 확대와 국가 체제가 확립됨에 따라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종래의 무속 신앙과 같은 원시 종교와 시조 신화와 같은 조상 숭배 사상만으로는, 새로운 지배 체제를 이끌어 갈 수 없었다.
강력한 왕권의 수립을 통하여, 귀족 세력을 누르고 동요하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지배 사상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때마침 전해 들어온 불교는 그 지배 이념으로 적당하였다. 신라의 불교 공인이 늦었던 것은 그만큼 중앙 집권적 국가로의 발전이 늦었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 아래 수용된 불교는 왕실과 국왕의 권위를 내세우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신라의 법흥왕은 바로 불법을 일으킨 왕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진흥왕(재위 540~576)은 불교를 통해 세상을 다스린다는 전륜성왕에 비유되었다. 신라 왕실에서는 자신들을 인도의 석가모니와 같은 찰리종(크샤트리아, 왕족)이라 하였다. 진평왕(재위 579~632)과 왕비의 이름은 각각 백정, 마야부인인데, 이는 석가모니 부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23대 법흥왕 이래 28대 진덕여왕(재위 647~654)까지의 신라의 모든 왕은 그 이름을 불교에서 취하고 있다.
이처럼 신라 왕실이 자신들을 석가모니와 같은 종족이라고 표방한 것은 석가의 권위를 빌어 왕권 강화를 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지배 체제의 유지에 불교를 이용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백제와 고구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왕은 곧 부처’라는 사상에 따라 지배층인 귀족은 보살에 비유되었다. 그리고 불법에 귀의하는 것은 하나의 왕을 받드는 같은 백성이라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써, 국가의 통일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나라를 지키는 것이 불법을 지키는 것 - 호국 신앙으로서의 불교
결국 삼국 시대의 불교는 왕권 강화와 지배층의 특권을 옹호하는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므로 불교가 호국의 성격을 강하게 띨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질병의 치료나 자식을 구한다거나 하는 개인의 현세 이익을 비는 경우도 많았으나, 대체로 국가의 발전을 비는 호국 신앙으로서의 성격을 더욱더 강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따라서 전쟁에서의 승리, 민란의 진압, 국왕의 질병 치료 등을 목적으로 한 법회가 자주 행하여졌다. 그뿐만 아니라 삼국 시대의 허다한 사찰의 건축도 불법 자체만을 목적으로 지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규모가 컸던 백제의 왕흥사나 신라의 황룡사 같은 곳은, 모두 절을 짓게 된 동기가 호국의 도량을 마련하는 데 있었다.
특히 황룡사는 진흥왕 때부터 시작하여, 모두 100여년간에 걸쳐서 신라 최대 규모의 불상, 9층 탑, 종 등을 차례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에서도 9층 탑과 불상이 진평왕의 옥대와 더불어 신라의 호국을 상징하는 세 가지 보물이었다는 점에서, 호국의 도량으로서의 황룡사의 중요성을 가히 짐작할만하다. 더구나 황룡사의 9층 탑은 층별로 왜, 중국, 말갈 등 아홉 나라를 상징하며, 이들을 정복하여 조공을 받을 수 있다는 호국의 신념에서 세운 것이다.
호국이 곧 호법, 즉 나라를 지키는 것은 곧 불법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당시의 호국 신앙의 요지이다. 따라서 승려들이 전쟁을 옹호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고구려의 승려 도림은 장수왕의 한성 공격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백제에 와서 첩자로서 활동하기까지 하였다. 신라의 원광(?~630)과 같은 승려가 임전무퇴 등 전투에서 용감하기를 권하는 세속오계를 제정한 것도 호국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백제 멸망 뒤에 복신(?~663)과 함께 주류성에 은거하며 부흥 운동을 주도했던 도침(?~661)도 승려였다.
그러나 삼국 시대 말기에는 이 같은 호국 신앙으로서의 불교도 변모하였다. 점차 종교적, 신앙적인 의미의 내세적인 불교로 바뀌어 간 것이다. 그리하여 내세에는 미륵 정토에 다시 나기를 기원하는 미륵 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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