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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공부하기/인문학

[철학] 형이상학-Riddles of Existence

by som-mong 2022.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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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이상학은 많은 분야들 중 존재론은 가장 기초적인 사물들에 관한 형이상학의 한 분야이다. 존재론에 종사하는 철학자는 평범한 견해에 숨겨진 놀랄만한 존재자를 발견할 수 있노라고 논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 존재자는 어떤 익숙한 사실들에 묻혀있다고 기대된다. 그 존재자는 일단 우리가 올바른 방식으로 생각하자마자 우리에게 명백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 존재자를 반대하는 사람에 따르면, 그것의 명백한 실존은 하나의 환상이다.
  사과 세 개를 생각해 보자. 그 사과들이 몇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는 것은 평범한 사실이다. 속성은 색, 형태, 구성, 위치, 온도, 나이 등을 포함한다. 속성이란 어쨌든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어떤 것을 말한다. 만일 어떤 것들이 실존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에게 용어 ‘속성’을 할당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는 논쟁적인 가정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어쩌면 속성과 같은 그러한 것들은 실제로는 없을지도 모른다. 약간 더 표준이 되는 용어, 즉 두 가지 것들 이상의 특징이 되는 속성은 보편자라 부른다. 다시 말해서 보편자란 다수의 사물들이 될 수 있는 어떤 것을 말한다.
  우리는 사과 세 개가 공통적 특징을 지닌다는 평범한 사실을 주목했다. 이것은 사과들이 공유하는 속성이 있다고 말함으로써 우리가 동등하게 잘 진술할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이다. 공유된 속성들은 두 가지 이상의 특징이며, 그래서 그 속성들은 보편자로 적격이 된다. 사과들은 실존하지 않는 보편자를 공유할 수 없다. 이 단순한 점은 보편자가 실존한다는 사실을 확립하는 것 같다.
  보편자의 실존에 관한 논의는 형이상학에서 오래된 토론거리들 가운데 하나이다. 하지만 몇 가지 단순한 관찰이 보편자의 실존을 결정적으로 밝히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보편자가 정말로 실존하는지에 관한 물음은 대단히 도전적인 일로 밝혀진다.
  세 개의 사과가 공통된 속성을 지녔다는 것을 우리는 거부하려 할 수도 있다. 엄격히 말해 사과들은 정확히 똑같은 색을 지닌 것도 아니고, 화학적 구성도 다르다. 이런 사항들에 고무된 우리는 모든 점에서 이 노선을 고수하면서 사과들은 공통된 속성을 전혀 갖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 노선은 옹호하기 어렵다. 한 가지 이유는, 그 사과들이 틀림없이 닮았다는 점에서 우리가 그것들을 사과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것들이 사과라는 공통된 속성을 지닌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두 사물이 어떤 식으로든 정확히 똑같을 수 없다는 지켜낼 수 있다고 해보자. 그럼에도 사물들의 속성들 사이의 차이는 우연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어떤 점에서 아주 유사한 많은 사물들이 서로 미묘하게 다른 것으로 밝혀진다 해도, 다수의 사물들이 최소한 공유해왔을 어떤 방식들이 있다. 이것들이 바로 보편자이다.
  보편자의 실존을 증명할 다른 방법이 있다. 우리가 대상을 본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떤 대상의 색깔도 본다. 대상의 색, 모양, 결 등의 속성들 각각은 다른 사물들이 존재하는, 그렇지 않으면 존재해왔을 하나의 방식이다. 그 속성들은 실존한다. 그것들은 공유 가능한 속성들이며, 그러므로 그것들은 보편자이다.
  대상이 지닌 지각 가능한 특징을 우리가 알기나 하는지 의심을 드러내기 위해, 지각에 대한 어떤 철학적 회의주의자는 그와 같이 일반적으로 인정된 사실, 즉 우리의 지각적 오류가능성을 이용한다. 그러나 보편자의 옹호자는 곧바로 그 회의주의에 반론하지 않는다. 강력한 지각적 논증이 여전히 보편자의 실존을 옹호하기 위해서 남아있다. 빨간 사과가 그 색을 지니지 않고, 또한 어떤 것도 그 색을 지니지 않는다 해도, 그러한 어떤 색깔이 존재해야만 한다. 빨강색은 당신이 사과를 바라보는 한 가지 방식이란 단순한 사실은 사물들이 있기 위해서 그와 같은 어떤 방식이 실존한다는 것을 함축하는 것 같다. 복잡한 사물들은 최소한 이 색깔을 지니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그 색깔은 보편자이다.
  그 밖의 보편자의 의미에 관한 논증은 우리의 주의를 끌 만하다. 그 논증은 우리가 생각들을 명확히 말하기 위해서 언어를 사용할 때 하고 있는 그것에 초점을 맞춘다. 주어-술어 문장에서 술어를 통해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다양한 사물들이 지닐 수 있는 어떤 속성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술어를 통해 우리가 의미하는 것은 보편자이다.
  보편자를 찬성하는 마지막 짧은 논증은 이렇다. 빨강과 파랑은 서로 다른 색이다. 그러므로 두 가지 색깔이 실존한다. 어떤 색깔은 공유 가능한 색깔이다. 그러므로 보편자는 실존한다.
  그러나 보편자의 실존은 문제를 제기한다. 빨간 상태가 사과 세계에 의해 공유된 보편자라는 가설을 조사해보자. 보편자는 그 사과들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할까? 우선, 보편자는 어디에 있는가? 그 위치에 대해 유효한 가능성은 두 가지가 있지만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관심을 끌지 못한다.
  첫 번째 가능성은 보편자가 공간에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편자는 실존하지만 어디에도 없다. 보편자를 지닌 사과와 같은 사물은 공간에 있지만, 보편자 그 자체는 그렇지 않다.
  다른 가능성은 이렇다. 보편자는 보편자의 실례가 실존하는 어디에든 나타난다. 그래서 빨간 상태는 사과 세 개가 있는 곳에 나타나며, 다른 빨간 사물 각각이 있는 곳에도 역시 나타난다.
  보편자에 대한 또 다른 의심은 관계와 연관되어 나타난다. 보편자실재론의 주장에 따르면, 사물들이 서로 관계할 수 있는 방식도 있다. 그들은 그 방식을 관련 있는 관계 방식이라고 부른다. 많은 관계는 다양한 사례를 갖는 것 같다. 만일 당신과 내가 각각 무언가를 나르고 있다면, 우리는 둘 다 무언가를 나르는 관계를 갖는다. 만일 우리는 각기 이런 저런 영화배우와 나이가 같다면, 우리는 누군가와 서로 같은-나이-인 관계를 갖는다. 이것들은 하나의 관계가 많은 경우에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이다. 보편자실재론에 따르면, 이 관계들 역시 보편자이다.
  보편자에 관한 새로운 문제는 실례와 관계가 있다. 어떤 속성을 예시한다는 것이란 단지 그 속성을 지니는 것이다. 당신이 행복할 때, 보편자실재론은 당신이 행복을 예시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당신과 행복 사이의 관계, 즉 예시가 있음을 함축하는 것 같다. 보편자 이론을 예시에 적용해보자. 그러면 당신의 행복한 상태는 당신, 행복, 세 번째 것, 즉 당신을 행복에 관계시키는 예시를 포함한다. 방금 이 예시 관계는 마찬가지로 어떤 다른 보편자 속성을 그 속성이 있는 사물에 관계시킬 것이다. 그래서 보편자실재론의 견해는 예시가 보편자, 즉 관계인 보편자를 함축한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그 이론은 이제 당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에서 세 가지, 즉 당신, 행복, 예시를 발견한다. 그럼에도 만일 그 사실에 이 세 가지가 있다면, 그것들은 어떤 점에서 관계를 맺는다. 행복과의 예시 관계를 지님으로써 당신은 예시와 행복에 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이 주장에 관해서 만일 예시가 어떤 사실을 진술한다면, 보편자실재론 견해의 적용사례는 개입된 네 번째 것이 있음을 함축하는 것 같다. 그 이론은 세 가지, 즉 당신, 행복, 예시 사이에 유지되는 ‘~을 지니는’ 관계가 있음을 함축하는 것 같다. 그것들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끝없이 무언가가 있음을 주장한다. 어떤 것과 그것이 지니는 속성을 연결하는 관계의 폭발을 우리는 목격했다. 이는 너무 복잡한 방법이다. 보편자를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누군가조차 그 모든 관계를 믿기는 어렵다.
  우리는 이제 막 도를 넘는 것 같은 보편자가 있다고 생각할 이유들을 알아보려고 한다. 예를 들어, 보편자를 지지하는 의미 논증에서, 어떤 주장은 우리가 주어-술어 문장의 술어에 의도하는 역할에 대해서 제기된다. 그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보편자를 생각하고 나서, 어떤 문장의 술어를 그 문장 주어의 보편자에 귀속시키려고 의도한다. 우리가 술어를 사용할 때 보편자에 귀속시킨다는 주장은 무해하고 어쩌면 심지어 옳아 보인다. 그렇지만 우리가 서술할 때 항상 하고 있는 일이 이것이라는 주장을 거부하도록 요구하는 아주 강력한 논증이 있다. 만일 그 추론이 성공한다면, 그 일은 보편자실재론에게 큰 문제다.
  이 위협적인 추론 노선을 평가하는 데, 어떤 속성이 그 자신의 실례인 것 같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주목함으로써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든 속성은 적어도 속성이다. 만일 우리가 여기서 보편자실재론의 견해를 응용한다면, 모든 속성은 보편자, 즉 속성이라는 상태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추리할 수 있다. 만일 참으로 모든 속성이 이 속성을 지닌다면, 정말이지 바로 그 속성, 즉 속성이라는 상태를 지닐 것이다. 이것 역시 보편자, 즉 속성이라는 상태를 예증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그 자신의 실례, 즉 우리가 자기 자신을 예시하는 일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그것은 다른 논증들과 분리되어 있는 뜻밖의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보편자는 그 자신의 실례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행복한 상태는 그자체로 행복하다고 생각할 좋은 이유가 전혀 없다. 그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보편자는 사물의 단순한 하나의 방식인 것으로 생각된다. 보편자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정신을 지니고 있지 않다. 다른 예로 사과라는 상태는 전혀 사과가 아니다. 우리가 사과 개수를 셀 때, 합계에서 사과라는 상태를 포함시키지 않고 세지 않은 어떤 사과들을 남겨 놓는 것은 아님이 확실하다!
  보편자실재론에 의해 수용된 많은 보편자의 실존을 받아들이기 위한 철학적 대안들은 무엇일가?
  [성긴 보편자] 가장 친근한 대안적 견해에 따르면, 보편자가 있지만 보편자실재론이 받아들이는 만큼 많은 것은 아니다. 사물들의 방식에 어떤 명백한 차이가 있을 때마다, 서로 다른 보편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보편자는 눈에 띄게 드문드문하다. 특히 사과가 아닌 상태, 비-자기-예시 같은 부정적 보편자는 전혀 없다. 어쩌면 일상적 술어의 의미로 기여하는 보편자도 전혀 없을 것이다. 성긴 유전자 착상에 대한 현대의 선도적인 옹호자 데이비드 암스트롱에 따르면, 오로지 과학적 설명에서 사용된 속성들만이 진짜 보편자이다.
  하지만 성긴 보편자의 부정성 개념은 불투명하며 진짜 보편자를 확인하기 위해 의지할 만한 원리를 찾아야한다. 성긴 접근방법은 보편자의 위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얼마나 적은 보편자들이 예시된다 한들, 그것들은 다양한 위치와 위치의 결여에 대한 미심쩍은 대안을 주장한다. 그래서 그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마지막 문제는 철학적 견해에 호소하는 보편자가 더 성길수록, 보편자로 적당해 보이는 것들을 설명하기 위한 그 견해가 더 난처해진다는 것이다.
  [트롭] 보편자실재론에 의해 승인된 많은 보편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은 ‘트롭’ 이론이다. 트롭은 하나의 속성이다. 트롭은 어떤 하나의 사물이 있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트롭은 특정한 사물이지 보편자가 아니다. 각각의 트롭은 오로지 하나의 존재자에 의해서만 예시될 수 있다. ‘트롭 이론’은 보편자의 위치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는 것 같다. 트롭은 하나의 실례만 지니는 까닭에, 각각의 트롭은 그 실례가 있는 하나의 장소에 완전히 위치할 수 있다.
  하지만 트롭 이론은 그것만의 문제들이 있다. 두 소화기의 모양 트롭은 그 모양 트롭들이 다른 하나와 최대한 닮았을 때 ‘동일하다’고 맞게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가 가끔 모양의 ‘동일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이지 모양의 최대유사성일 뿐이다. 우리가 동일하다고 간주한 모양들은 어쨌든 최대한 똑같을 필요가 없다. 두 소화기가 모양 면에서는 정확히 똑같지만 크기는 다르다고 해보자. 큰 소화기의 모양 트롭은 작은 소화기의 모양 트롭보다 더 큰 영역에 미친다. 세 번째 소화기가 큰 소화기와 모양, 크기 면에서 둘 다 어울린다고 해보자. 그럼에도 이 사실은 처음 두 소화기가 모양 면에서 동일하다는 사실과 충돌하지 않는다. 트롭 이론가는 이런 종류의 동일성에 관해서 다른 설명이 필요하다.
  [집합] 집합은 수학적 대상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다양한 이론적 목적에 유용하다. 집합들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그것들이 정확히 똑같은 원소를 지닐 때 동일하다는 것이다. 집합의 원소자격은 그 집합이 어떤 집합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이다. 이 때문에 집합은 단순히 중괄호 안에 그 원소들을 기록하여 기술하는 경우가 흔하다. 집합은 어떤 점에서 아주 잘 이해된다. 만일 보편자가 집합으로 밝혀진다면, 지적으로 편해질 것이다.
  보편자가 집합 실례들이란 견해는 어떤 경우에 많은 보편자주의와 다르다. 그 이론은 사물이 어떻게 있는지와 관련해서 어떤 명백한 차이가 있는지와 무관하게 서로 다른 보편자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집합적 관점의 다른 결함은 사실들의 구성과 관련이 있다. 단순한 사실은 그것을 옳게 만드는 사물로 구성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당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은 명확히 당신을 포함한다. 그래서 그 사실의 구성에 당신을 포함시켜도 좋은 것 같다. 행복이라는 보편자가 있다면 그 사실은 행복도 포함한다. 그래서 그 보편자는 마찬가지로 그 사실의 구성에 포함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당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은 오프라 윈프리를 전혀 포함시키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오프라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한 개체 집합의 한 원소이다. 집합은 어쨌든 그 원소들로 구성된다. 따라서 만일 행복이 행복 개체 집합과 동일하다면, 오프라는 어떤 점에서 행복을 구성하는 것에 포함된다. 그것에 의해서 그녀는 당신이 행복하다는 사실에 포함된다. 그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
  [유명론] 고전적 유명론에 따르면, 어떠한 속성도 전혀 없고, 집합이든 아니든 어떤 종류의 보편자도 전혀 없으며, 트롭도 전혀 없다. 오로지 특정한 대상들만 있을 뿐이다. 각각의 단어는 보편자의 특성인 일반성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에 대처하기 위해서 많은 유명론자는 그들의 이론을 오로지 특정하게 기록된 표시와 단어를 대신한 소리에만 사용하도록 제한했다. 당신과 내가 ‘빨강’이라고 발음할 때, 우리는 이 두 가지 소리로 ‘똑같은 단어’를 말한다. 유명론자는 이런 종류의 ‘똑같은-단어’ 사실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동안, 어떤 보편자가 두 가지 소리에 의해 공유된다는 것은 거부한다.
  유명론의 주요 난점은 보편자의 실존에 대한 논증을 생기게 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유명론자들은 바꿔 쓰기(paraphrase)를 제안한다. 그들이 제안한 바에 따르면, 속성의 실존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실들을 진술하는 문장은 실제로 그러한 사실들을 전혀 진술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것을 보여주려고 다른 문장을 사용하다. 이 다른 문장은 원래 문장과 똑같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반면에, 보편자를 요구하는 것으로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주장하는 유명론자는 단지 특정한 대상만 쓰이는 동안 이 형용사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 일은 쉽지 않다. 유명론자는 명백히 속성에 대한 것으로 보이는 그럴법한 주장에 관한 어떤 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은 그 주장이 옳지만 실제로 속성에 대한 주장은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주장이 실제로 전혀 옳지 않다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각각의 주장을 옹호가기 위해서 그들은 설명적 작업을 해야 한다.
  [개념론] 개념론에 따르면, 단어에 일반성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 정신의 어떤 것, 즉 개념이다. 개념은 그것에 의해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수단이다. 우리는 보트 개념을 지닌다. 우리의 보트 개념은 보트들에 적용되지만 그 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 개념은 그 점에서 일반적이다. 이 개념을 대신해서 ‘보트’라는 단어를 채택함으로써, 우리는 그 개념에 들어맞는 보트들에 그 단어의 일반 적용사례를 부여한다. 이것이 개념론의 설명이다. 그 설명은 개념론자들에게 모든 보트가 공유하는 어떤 하나의 존재자를 거부하게 만드는 동안, 그들에게 고안된 일반성을 지닌 어떤 것, 즉 개념을 제공한다.
  개념론은 비판에 직면한다. 사과 세 개가 똑같다는 일상적 사실을 사용해보면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 정신 외부에서 구성된 사실인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 사실을 구성하는 나머지는 사과들이 공유하는 보편자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각각의 사과가 예시하는 어떤 트롭들 사이의 유사성일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그 밖의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든 그 사실의 나머지는 사과에 속하지만 우리에게는 속하지 않는 어떤 것으로 보인다. 개념론자는 사과를 사과가 있는 거기에 위치시기지만, 그 사실의 나머지에 위치시키지는 않는다. 정신적인 것, 즉 나무에서 자랐다는 개념은 사과가 나무에서 자라나면서 공통된 것을 지녔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의 나머지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럼에도 정신은 그 사실의 어떤 부분에 위치시키기에는 부적절한 장소에 있는 것 같다.
  개념론자는 사물에 개념을 할당할 어떤 일도 할 필요가 없다. 개념은 그 적용사례를 본질적으로 갖는다. 개념은 그저 어떤 사물, 즉 그 사물의 본성에 적용된다. 거기서 멈추는 개념 적용 사례에 관한 설명은 문제가 있다. 그 설명은 일반적 단어가 왜 그와 같이 적용되는지에 관한 유명론자의 설명을 바람직하지 못하게 비교하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전혀 기쁘지 않다.
  우리는 보편자들이 실존하는지에 관한 물음을 향한 여러 접근방법들에 대한 문제점들을 살펴보았다. 이것에 대한 더 많은 철학이 있지만, 그것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는 않는다. 보편자 문제는 다루기 힘든 문제다. 위로가 되는 것은 대안적 접근 방법들의 강점과 약점을 평가하는 것이 지적으로 값진 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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