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합론에 대한 비판]
정합론에 대한 비판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두 가지 비판을 살펴보면, 정합론은 한 믿음의 정당성을 그 믿음이 속한 체계와의 정합성에 의하여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합론에 따르면, 두 모순된 믿음들이 각기 다른 체계에 정합적으로 속함으로써 동시에 정당하게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처럼 보인다. 정합론에 대한 다른 비판을 보면, 정합론에 의하여 인식적으로 정당하게 되었다고 간주하는 믿음들이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두 비판의 공통점은 양자가 모두 인식 정당성과 진리의 연관성에 대한 특정한 견해에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인식 정당성은 진리를 추구하고 거짓을 피하는 목적 아래서 이루어지는 평가적 작업이다. 즉, 믿음들이 인식적으로 정당하게 되었는가를 평가하는 것은 세계에 대한 올바른 표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의를 갖는다.
위 비판의 문제점은 인식 정당성과 진리의 관계가 위 비판이 가정하는 것처럼 분명하지 않다는 데에 있다. (즉, 정당화의 정도가 진리의 개연성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 분명치 않다)
한 믿음이 인식적으로 정당하게 되기 위해서는 그 믿음이 참이 될 개연성이 높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식 정당성에 대한 지나친 요구일 것이다.
정합론에 대한 다른 비판으로는 ‘감각경험으로부터의 괴리’를 들 수 있다. 설명하면, 정합론에서는 감각경험으로부터 괴리된 정합적인 믿음 체계를 구성할 수 있는데, 이는 경험으로부터 괴리된 믿음들은 정당하게 되었다고 할 수 없는데, 정합론에 따르면 이들이 정당한 믿음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위 비판이 보여주는 것은, 한 믿음의 체계가 정당한 믿음들을 산출하려면, 그 체계가 감각 경험의 입력을 무시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인식 정당성을 순수하게 믿음들 사이의 내적인 정합성에 의하여 정의하는 순수한 정합론은 위의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정합론은 자신의
입장을 다소 수정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할 수 있다.
⇒ 한 믿음이 인식적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가 속한 체계의 다른 믿음들과 정합적이어야 하며, 또한 그 체계는 감각 경험의 입력을 무시하지 않는 체계이어야 한다.
이는 지각적 믿음의 인식 정당성은 최소한 상당한 정도 이론적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감각 경험에 의존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경험으로부터의 괴리에 의한 정합론 비판이 이 정도까지 발전되면, 토대론이 정합론에 비하여 상당히 우세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이에 대해서 다음에서 마지막 논쟁을 살펴보겠다.
[정합론과 토대론의 논쟁(결론)]
위 비판의 전제로는‘한 사람이 갖는 감각 경험의 내용은 그 사람이 이미 가진 믿음 체계 또는 배경지식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는다’이다. 그러나 이 전제를 부정하게 되는 곳에 정합론과 토대론의 진정한 싸움터가 있다. 감각경험이 이론에 의존하는가 아닌가 하는 논점은 정합론이 경험으로부터의 괴리에 의한 비판을 견디어 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될 뿐 아니라, 토대론의 사활과도 관련된다.
이미 보았듯이, 이 논점은 토대론의 가장 설득력 있는 형태인 온건한 토대론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온건한 토대론의 핵심 주장은 지각적 믿음이 다른 믿음에 의존하지 않고 감각 경험에 의하여만 정당성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인데, 만약 감각 경험의 내용이 다른 믿음들에 의존하여 결정된다면, 그 핵심 주장이 붕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감각 경험이 이론 의존적이라고 한다면, 감각 경험의 입력을 중시하는 믿음 체계도 궁극적으로 정합론의 체계를 지닐 수밖에 없게 되어 정합론이 승리한다. 한편, 감각 경험이 이론 독립적이라면, 경험으로부터의 괴리에 의한 정합론 비판이 효력을 발휘함과 동시에 경험에 의하여 정당하게 되는 지각적 믿음은 기초적 믿음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어 토대론이 승리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 경험 또는 관찰이 우리의 배경지식에 의하여 현저히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보인다. 이는 현대의과학적 증거로 인해 증명된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감각 경험은 이론 의존성을 띤다는 것을 말 할 수 있다. 여기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수정된 정합론의 주장이 토대론보다는 그리고 고전적 정합론보다는 더 그럴듯한(현실에 적합한) 이론이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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