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합론의 유형들]
- 긍정적 정합론과 부정적 정합론
정합론은 긍정적 근거의 존재와 논박자 모두를 포함하여 정합성을 정의하는가, 아니면 논박자의 부재만으로 정합성을 정의하는가에 따라, 긍정적 정합론과 부정적 정합론으로 구분될 수 있다. 부정적 정합론에 따르면, 한 명제에 대한 믿음이 정당하기 위해서는 그 명제를 믿기 위한 별도의 긍정적인 근거를 가질 필요는 없고, 다만 그 믿음에 대한 논박자가 없는 것으로 족하다. 한 믿음이 그것이 속한 믿음 체계 내에 논박자를 갖고 있지 않으면 그 믿음은 체계와 정합적이고, 따라서 정당하다는 것이다. 반면, 긍정적 정합론에 따르면, 한 믿음이 정당하게 되기 위해서는 긍정적 근거의 존재와 논박자의 부재가 모두 요구된다. 이 이론에서는, 한 믿음이 그것이 속한 믿음 체계 내에 논박자를 갖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를 뒷받침하는 긍정적 믿음을 역시 갖고 있을 때 비로소 그 체계와 정합적이며, 따라서 정당하게 된다. 긍정적 정합론이 부정적 정합론보다 강한 형태의 정합론임은 자명하다.
- 선형적 정합론과 전체적 정합론
정합론은 한 믿음의 인식 정당성에 영향을 미치는 긍정적 근거 또는 논박자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 다시 선형적 정합론과 전체적 정합론으로 구분된다. 한 믿음을 정당하게 하는 근거는 흔히 그 믿음을 입증하는 전제로 이해된다. 즉 인식 정당성에서 문제 되는 근거와 믿음 사이의 관계는 각각 전제와 결론이라는 논증의 구조를 갖는 것으로 일상적으로 이해된다.
정합론이 위와 같은 추론에 관한 상식적 견해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정합성의 규정에 반영할 때, 선형적 정합론이 된다. 선형적 정합론에 따르면, 한 믿음이 그 믿음의 주제에 속한 일정한 범위의 믿음들을 고려할 때 정당한 것으로 나타나면, 그 믿음은 체계와 정합적이고, 따라서 정당하게 된다. 반면에, 한 믿음 체계를 이루는 모든 믿음이 문제의 믿음의 정당성을 위한 전제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합론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정합론은 전체적 정합론이다. 전체적 정합론의 기준에서 볼 때, 한 믿음이 체계와의 정합성을 통하여 정당하게 되려면, 그 믿음은 체계를 이루는 모든 믿음을 고려할 때 정당한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
[‘인식 정당성의 후퇴’ 문제]
인식 정당성의 후퇴의 문제로 정합론을 비판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앞서 살펴본 정합론의 유형들의 설명을 보면 부정적 정합론에서는 인식 정당성의 후퇴 자체가 발생하지 않으며, 따라서 인식 정당성의 후퇴를 통하여 부정적 정합론을 비판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인식 정당성의 후퇴 문제는 한 믿음과 그 믿음을 정당하게 하는 증거 사이의 관계가 선형적이면서 일방향적임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 정합론은 믿음들 사이의 정당화 관계에서의 우선성을 부정하고, 한 믿음이 정당하게 되려면 전체적인 체계와 잘 어울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인식 정당성의 관건은 믿음들이 상호 간 잘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잘 짜인 체계를 만드는가에 있다. 따라서, 전체적 정합론에서는 인식 정당성의 후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체적 정합론은 인식 정당화 과정의 일방향성을 부정하기 때문에, 후퇴의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선형적 긍정적 정합론이 인식 정당성의 후퇴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선형적 긍정적 정합론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 의존하고 있다. 선형적 긍정적 정합론은 단선적인 구조의 인식 정당성의 관계를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각기의 전제 믿음들은 또 다른 복수의 믿음들을 전제로 하여 정당하게 된다.
위의 논의로 볼 때 선형적 정합론과 전체적 정합론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정합성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정합론이 옹호하는 거미줄(뗏목)과 같은 구조 내에서, 한 특정한 믿음이 어떻게 정당하게 되느냐는 질문이 던져진다고 하자. 이 문제는 우선 구조 내에서 그 믿음에 근접한 위치에 있는 믿음들을 도입함으로써 대답 될 수 있다.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은 이 구조 내의 모든 믿음이 그에 근접한 믿음들에 의하여 정당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합론은 정당하게 된다고 한다. 기초적 믿음의 부정이 보다 더욱 거시적인 관점에서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은 어떤 두 개의 믿음들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정당성 관계를 통하여 연결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합론은 ‘연결된다’라는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가장 거시적인 관점에서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은 한 믿음의 정당성이 궁극적으로 잘 짜인 거미줄(뗏목) 체계 내에 위치함으로써 정당하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정합론은 이 질문에 대하여도 역시 “그렇다”고 대답한다.
위의 고찰이 보여주는 것은, 일단 인식 정당성에 대한 토대론적인 구조를 부정하게 되면, 거미줄과 같은 모양의 인식 정당성 구조가 자연스럽게 뒤따라 나온다는 것이다. 선형적 긍정적 정합론은 이 구조속에서 특정한 믿음의 정당성이 진행되는 최초 단계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며, 전체적 정합론은 동일한 구조 속에서 선형적 정합론의 대답을 더욱 진행하였을 때 나타나는 전반적인 구조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선형적 정합론과 전체적 정합론의 차이는 인식 정당성의 구조에 대한 상이한 견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구조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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