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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공부하기/인문학

[철학] 프랑스 철학-라캉, 푸코

by som-mong 2022.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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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캉의 욕망이론

  20세기 후반부에 프로이트는 어떻게 귀환하며, 특히 모던 시대에 억압되어온 무의식은 어떤 식으로 재해석하는가에 대해 라캉은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을 다시 끌어들여 소쉬르의 언어관을 적용하여 구조주의 이론을 만든다. 그런데 프로이트는 소쉬르가 나오기 전에 꿈 작용을 언어의 구조처럼 분석했다. 라캉이 암시를 얻은 것은 바로 이곳이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되어 있다’라는 말은 라캉의 이론을 가장 분명하게 표현한다. 이때 ‘언어처럼’은 은유와 환유로 구조된 ‘차이’의 체계인 언어를 말하기도 하고 언어는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진다는 소쉬르 언어관을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무의식에 언어체계를 끌어들임으로써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의식의 차원으로 부상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캉은 사유의 체계에 언어의 구조를 끌어들여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성 본능을 귀환시키면서 이것에 소쉬르 언어학을 적용하여 주체가 어떻게 언어(기표)의 지배를 받는지 보여준다. 소쉬르는 언어는 사물을 지칭하는 기표와 지칭 당하는 대상인 기의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언어는 차이에 의해 변별의 기능을 갖는 자의적 체계라고 했다. 기표는 단 하나의 기의에 고정되지 않고 관계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낳는다. 언어가 한 가지 의미에 고정되지 못하고 고리를 물 때 즉 기표만이 존재할 때 그 언어를 통해 생각을 표출하는 인간은 이 기표에 절대적으로 종속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언어의 세계 속에서 사는 한 주체는 기표의 지배를 받기에 그것은 ‘언어처럼 구조된다’는 것이다. 소쉬르의 언어관으로 인해 인간이 기표에 의해 지배받고 그 기표는 은유와 환유로 이루어졌으니 주체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해당한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되어있다’라는 말은 인간이 언어를 통해 존재하는 한 ‘인간의 의식은 은유와 환유로 구조되어 있다’는 뜻이고 이것이 라캉이 시도한 프로이트의 재해석이다. 그리고 이런 재해석에 의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라캉에게 와서 정치, 사회, 문화예술의 분야로 확대된다. 무의식과 똑같은 원리로 인해 욕망 역시 표층으로 올라온다. 욕망은 환유이다. 욕망은 기표이다. 그것은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하고 끝없이 의미를 지연시키는 텅 빈 연쇄 고리이다. 그렇다면 욕망의 구조도 은유와 환유가 아닌가.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것은 곧 죽음이다. 대상은 실제처럼 보였지만 허구가 아닌가. 대상을 실재라고 믿고 다가서는 과정이 상상계, 그 대상을 얻는 순간이 상징계, 여전히 욕망이 남아 그 대상을 찾아 나서는 것이 실재계다. 주체의 욕망을 충족시킬 것처럼 보이는 대상, 즉 대체가 가능하리라 믿는 단계, 이것이 압축이요, 은유이다. 그러나 충족시키지 못하고 다시 그다음 대상으로 자리를 바꾸는 전치, 이것이 환유이다. 그러므로 욕망 역시 언어처럼, 무의식처럼, 은유와 환유로 구조되어있다. 


2. 푸코의 권력 개념  
 푸코는 주체가 구성되는 방식이 자신의 주요한 연구 대상이라고 밝히면서, 연구의 개념적 도구들을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는 경제학적 관점으로 생산 관계에 관한 것, 둘째는 언어학적 관점으로 의미작용의 관계에 관한 것, 그리고 세 번째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도구로서 권력관계에 관한 것이다. 권력관계에 관한 것의 경우에 푸코는 “제도적 모델에 기초한 권력에 대한 사고방식에 의지”했을 뿐 그 자체에 대하여는 연구가 없었기에 이 영역을 보다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권력관계 자체의 속성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이다.
  푸코는 권력은 행위자들 간의 상호지배의 문제로, 여기서 지배란 특정 상황에 대하여 한 행위자가 비직접적, 비 즉각적인 방식으로 상대방의 행위에 영향을 끼치는 것, 즉 가능성의 영역을 구조화하는 것이며, 이 가능성에 상응하는 만큼의 자유는 권력이 행사되기 위한 필수요소가 된다.
  푸코 역시 권력을 폭력과의 대비와 연관 속에서 분석하는데, 그에 따르면 폭력이란 “신체나 사물들에 작용한다. 즉 그것은 강요하고 구속하며, 부수고 파괴하며, 또한 모든 가능성의 문을 잠근다.” 반면 권력은 참여자 상호 간의 인지 및 존재 주장, 그리고 가능성의 영역을 가지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또한 권력은 행사되기 위해서 폭력과 합의를 모두 필요로 한다. 권력의 원초적 기원 혹은 현재적 원인, 그리고 권력의 행사 방법이 폭력이든 합의이든 권력관계가 성립한 곳에 권력의 고유한 속성이 깃든다. 그곳에는 행위의 가능 영역으로서 자유, 당사자들 간의 존재 승인, 그리고 지배가 존재한다.
  생산 관계 혹은 의미생산의 관계는 그것이 경제학이나 언어학에서 파악되는 자신의 고유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언제나 권력관계와 함께 존재하고 있고 그것은 독자적으로 파악될 수 있다. 경제적 지배가 성립하든지 상징적 지배가 성립하든지 권력관계는 “행위에 대한 행위”이며 “전략 간의 대결”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푸코가 주체의 의미를 “통제와 의존에 의해 누군가에게 종속되는 것”, 그리고 “양심 또는 자기-지식에 의해 자기 자신의 자기신분성에 묶이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것이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사태에 관한 것이든 주관적이고 상징적인 사태에 관한 것이든, 그는 권력관계를 주체 구성의 근본 관계로 파악했다고 볼 수 있다. 권력은 나에게 행위의 가능 영역을 보여주고, 나로 하여금 그 속에서 위치를 파악, 선정하게 함으로써 나를 주체로 만든다.
  이러한 푸코의 주장에 대해 폭력과 권력의 구분기준이 “행위 가능성의 영역 또는 자유의 존재 여부”로 축소됨을 알 수 있는데, 도대체 그 행위 가능성 또는 자유는 어느 정도를 의미할 수 있는지 모호하다. 푸코의 권력 개념은 비 즉각적, 비직접적 방식 및 가능성의 영역이라는 모호한 속성을 포함하기에 여전히 폭력과 권력의 정확한 구분에는 이르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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